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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제목] 釣魚大全 번역본 및 전문 .
등록자 :       등록일 : 2007-11-23, 11:52       열람 : 4094


釣魚大全 번역본 및 전문

국내에서는 번역본이 현재까지 두권이 발간 되었다. 그 중 하나는 절판된 " 안동림택, 출판사 다락원, 1980년"과 둘째는 이재룡택, 출판사 강마을, 2000년"이다. 안동림택에는 "조어의 예"가 번역되어 있지만, 이재룡택에는 "조어의 예"가 번역되어 있지 않다.

문학사적으로 아이자크 월턴(Izaak Walton)의 조어대전이 의미가 있다고 하지만 그리 쉬운 문장이 아니다. 셰익스피어의 영문 원서를 읽어 본 분이라면 그 문체나 단어가 극히 어렵다는 것을 알고 계실 것이다. 흔히 쓰는 단어도 현재의 철자와 틀려서 맨 처음 장을 읽을 때부터 사전을 찾아 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마치 훈민정음이나, 홍길동전, 그리고 기미년 독립선언문을 현재의 우리들이 쉽게 읽지 못하는 것과 같다.

마찬가지로 위 두분의 노력으로 "조어대전"이 번역되었지만, 영어 원문과 비교해 보면, 현재 우리 플라이낚시인들이 흔히 쓰는 용어가 아닌 어딘지 서먹한 글들이 많이 있다. 어찌보면 플라이낚시인들이 쓰는 용어가 상당히 발전되었음을 의미 하지만, 완벽에 가까이 번역된 글은 아니다. 저는 이중에서 안동림택의 "조어대전"이 훨씬 원전에 가까운 글로서 인식된다. 단지 아까운 것이 있다면 절판되어 거의 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만약 이 두권의 번역본이 마음에 들지 않는 다면 (The Compleat Angler: Or the Contemplative Man's Recreation by Izaak Walton, Charles Cotton Paperback: 464 pages Publisher: Modern Library; Reprint edition (June 1998) ISBN: 0375751483 책값11불)을 권하며 현재 인터넷에도 원문이 등재되어 있다. 주소는 다음과 같다. http://emotionalliteracyeducation.com/classic_books_online/tcang10.htm

조어대전 중에서 자주 인용되는 글귀는 “한 가지 리크레이션(낚시)에서 또 한가지의 리크레이션(명상)을 만들어 낸다”라는 글이다. 어찌보면 낚시란 마치 특공대 복장으로 전투 하듯이 하는 것 보다, 낚시의 과정을 즐기고 자연을 벗 삼아 김삿갓 달 가듯이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나 하는 점이다. 월턴은 “낚시의 즐거움이라는 것부터 말씀 드린다면, 어떤 경우에서 자기의 리크레이션으로서는 낚시가 제일이며 낚시할 때의 즐거움이란 그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다” 고 했다.

아이자크 월턴은 어떠한 사람이었는지에 대해서 안동림이 쓴 다음의 글을 올린다.

1. 釣魚大全과 아이작 월턴

① 생애와 업적
아이자크 월턴(Izaak Walton)은 1593년 8월 9일 영국 중부의 전원 지대인 스태포드 주의 주도 스태포드에서 태어났다. 어린시절을 고향에서 보내며 교육도 그곳에서 받은 뒤, 1611년에 런던으로 가서 철제상점에서 일했다. 이때가 18세 무렵의 일이다. 약 7년 동안 그곳에서 일하다 독립하여 직접철제 상점을 경영하게 되고 또 그 상공 조합원도 되었다.

월턴은 본래 사교성이 뛰어나 당시의 유명한 승정(僧正)이나 지식인, 극작가들과의 교제가 두터웠다. 월턴은 낚시 이외에도 문학을 사랑하여 직접 시를 쓰기도 했다. 20세 무렵에는 그런 시인들과의 교제가 무척 많았으며 한편 또 대단한 독서광 이기도 했다.

그는 특히 세인트 던스턴 사원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었는데 1612년 무럽부터는 이 사원의 신부였던 던 박사와 친교를 갖게 되었다. 던 박사는 당시 일류 연설가이자 시인이었다. 두사람중 월턴은 여성적이고 온후한 성격인 데 비해 던 박사는 남성적이며 격정가였다. 이 던 박사와의 교재로 인해서 헨리원턴경이나 원리 킹 박사, 또는 이튼 대학의 존 헤일즈 경 등과도 친분을 맺게 되었다. 그리고 고승이며 시인인 조지 하버트와 극작가인 셰익스피어, 벤 존슨 등과도 차츰 알게 되었다.

아이자크 월턴은 1626년 12월에 첫 결혼을 했으나 결혼생활 14년만에 아내가 죽었고 그 동안에 여섯이나 있었던 자식들도 모두 죽었다. 이렇듯 가정적으로 불우했기 때문에 그는 낚시 속에서 명성을 찾으려 했는지도 모른다. 첫 아내가 죽은지 6년후 재혼하여 2남 1녀를 얻었지만 살아 남은 것은 아들 하나뿐이었다. 월턴이 그토록 장수한데 비해 다른 가족들은 모두 단명했다. 두번째 아내도 결혼생활 16년만에 역시 죽었다.

여기서 월턴이 살았던 시대의 영국을 문화사적인 측면에서 살펴본다면, 먼저 철학 분야에서는 프랜시스 베이컨이 활약하고 있었고, 또 세계적인 극작가 셰익스피어가 있었다. 한편 밀턴, 홉스, 뉴톤…등이 각기 자기 분야에서 눈부시게 활약하고 있었다. 한편 정치적으로는 종래의 식민지 경영을 발전 유지시키면서 국내적으로는 국민회의와 국왕 간의 싸움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러나 월턴은 정치적이기 보다는 문학적인 사람이었으므로 그런 국내외적인 문제에 관여하지는 않았지만 그러나 본의 아니게 그런 소동에 말려든 일은 적지 않게 있었던 모양이다.

월턴은 런던시 북부의 웨어가 근처의 리 강에서 곧잘 낚시를 하곤 했지만 때로는 고향 스태포드 근교에서도 낚시를 했다. 만년에 이르러 불행이 계속된 그는 종교로 치우치게 되고 따라서 고승들과 사귀는 일이 많아졌는데, 그들 또한 대단한 낚시꾼이었다.

아이자크 월턴은 1653년에 조어대전을 출간했다. 그때 그의 나이 60세였으나 여전히 건강하게 낚시와 저술에 몰두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월턴의 업적으로 크게 평가되는 것은 그의 전기문학이다. “던 박사전”, “하버트 전”, “후커 전”, “샌더슨 전”…등에 으해 그는 전기문학사로의 지위를 확립한 것이다.

만년의 20년 동안은 대부분의 세월을 윈체스터의 파아넘성에서 조용하고 한가한 분위기를 즐기며 살았다. 숱한 장서가 지금도 이 성에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1638년에 월턴은 90회의 생일을 맞이했고 그해 8월 9일, 그는 드디어 죽움이 다가왔음을 깨닫고 유서를 쓴 뒤 16일에 서명하고 이윽고 12월 15일 윈체스터 사원에서 죽었다. 묘지도 바로 그곳에 있다.

조어대전의 의의

아이자크 월턴이 조어대전(The Complete Angler or Contemplative Man’s Recreation)을 처음 저술한 것은 1653년 5월 9일, 성 던스턴 성당 안의 리처드 마리오트 社에서 였다. 즉 지금으로부터 3백 20여년 전의 일이었다. 그때만 해도 낚시가 그리 대중화되지 않았던 때문에 4~5년만에야 한판씩 찍을 정도였고 또 지금처럼 “釣師의 바이블”이라고 격찬되지도 않았다. 그후 약 1백년 동안에 겨우 10판을 거듭했을 뿐이던 것이 갑자기 날개가 돋치기 시작한 것은 19세시에 들어서면서 부터였다. 전 유럽은 물론 미국에서도 판을 거듭하여 19세기 중엽에서는 이미 40판을 넘었고 말엽에서는 80판을 넘었으며 20세기에 들어서자 온갖 출판사에서 갖가지 장정들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여 이제는 판수로 그 간행된 책수를 헤아릴 수가 없게 되고 말았다.

釣魚大全이 이렇듯 인기를 모으고 이윽고는 온 세계에서 “낚시의 성서”라고 까지 일컬어지게 되었으며 또 나아가서는 일류 조사치고 이 책을 읽지 않았거나 모른다는 것은 큰 수치라고까지 여겨지게 된 까닦은 어디에 있을까? 단지 낚시의 방법이나 물고기의 생태, 미끼, 요리법 따위 실용적인 것만이었다면 3백년 동안이나 그 인기를 독점했을 리가 없다. 이 책이 꾸준한 인기를 누리는 비밀은 바로 낚시라는 행동이 이루어지게 되는 인간 심리의 수수께기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 있다. 어째서 우리는 낚시를 하는가? 단순히 물고기가나 낚는 것만이 목적이라면 그것은 어부의 일이다. 월턴은 이 문제를 “명상하는 사람의 리크리에이션”이라는 부제와 함께 파헤친 것이다. 그것은 곧 조사의 기분이며 기분의 철학이다. 그 기분은 깊은 연구심과 대상에 대한 집념, 노력과 인내 끝에 우리에게 찾아들게 되는 즐거움인 것이다. 이 책에서 월턴은 줄곧 되풀이 말하고 있다. 바쁘다는 핑계로, 돈벌이를 핑계로 낚시를 하지 않는 사람들은 인간의 즐거움의 태반을 스스로 내버리고 있는 거라고.

이 조어대전(釣魚大全)에 대해서는 일찍이 영국의 위대한 수필 문학가인 찰스 램이 “이 저작은 매우 문학적이며 언제 읽어도 기분이 편해지는 특효약이다”고 평하고 있을 정도이다. 또 영국의 낚시 잡지인 조어(釣魚)클럽의 주간이었던 마아스턴도 “온 세계에서 월턴만큼 물고기를 알고 인간을 안 사람은 달리 없다”고 격찬하고 있다.

2. 釣魚의 藝에 대하여

런던의 한 고서점에서 묘한 책이 한권 발견 되었다. 1954년의 일이었다. 이 책을 발견한 사람은 칼 오토 키인부시(Carl Otto von Kienbusch)인데, 그 책은 표지도 떨어져 없어졌고 내용도 군데군데 찢어져 없어진 것이었으나 책 이름이 조어의 예(“釣魚의 藝”, The Arte of Angling)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저자도 누구인지 알 수 없지만 이 책이 1577년 판이며 세계에서 단 하나뿐인 것만은 분명했다. 조어대전(1653)보다 70여년이나 앞선 것이었다.
이 “조어의 예”의 내용을 보면 조사와 나그네의 대화로 시작되며 그 대화 속에서 낚시의 방법을 가르쳐 나간다는 구성이 “조어대전”과 매우 닮은 데가 있다. 이 책의 발견자인 키인부시는 “이 두 책 사이의 관계는 아직 분명치 않지만, 월턴이 제2판 이후 어째서 서두의 대화를 세 사람으로 고쳤는지, 그것은 이 “조어의 예”와 너무 비슷했기 때문이 아닌지 모른다”고 말하고 있다. 어쨌든 “조어대전”과 “조어의 예”는 흡사한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님을 알 수 있다. 특히 70여년이나 앞서 나와 있던 이 책을 월턴이 전혀 몰랐다거나 참고하지도 않았다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 결국 “조어대전”보다 어딘가 훨씬 더 소박하고 유머스러스하기까지 한 내용을 지닌 “조어의 예”에 윌턴의 문학적 재능이 더하여져서 이룩된 것이 “조어대전”이 아닐까 추측된다.

“조어의 예’의 원본은 그 후 프린스턴 대학 도서관에 기부되어 1956년에 그 복사판이 출판되었다. 그 후 현대적인 주석과 교정이 가해진 책이 다시 1960년에 옥스포드 대학 출판부에서 출판되어 쉽사리 읽어볼 수가 있게 되었다.

이상의 두 책을 번역함에 있어서 대부분의 어종이 영국 특유의 담수어들이어서 부득이한 것은 원명 그대로 하고 우리나라와 유사한 것은 우리 말로 대치시키고 원명을 달았다. 그리고 특히 “조어대전”의 번역은 초판본과 제5판 개정본을 참고하여 적절히 취사선택했다.




조어대전, 안동림택, 출판사 다락원, (1980년. 23 ~ 30쪽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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